몽당연필

꿩들의 가족 나들이

yousong 2004. 9. 18. 15:34
금오산 자연학습원 안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숲속의 빈 터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숲에 가려 천평도 채 되지 않는다.
산책을 즐기던 어느 날...
적막감 속에 까치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즈음
숲속의 비밀을 목격하였다.

장끼 한 마리가 먼저 숲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건너편 숲으로 내달음질 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11마리의 앙증맞은 새끼들이
일렬종대로 아빠 장끼를 따라 냅다 달려 가더니만
마지막에 어미 까투리가 뒤를 이어 숲으로 사라졌다.
꿩들의 가족들이 사라진 숲속을 한참을 바라다 보며
그들의 가족나들이를 생각하였다.
순간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흐뭇한 광경에 작은 웃음과 숲의 비밀을 알아낸 듯한
묘한 기쁨에 뿌듯했었다.

꿩들의 가족 나들이를 보며,
언제인가 가정폭력문제로 상담했었던 일이 떠올랐다.
겁에 질려있던 아이의 눈은 울었는지 충혈이 되어 있었고
상처투성이인 아주머니의 헝클어진
파마 머리카락 속에는 피가 엉켜 있었다.
폭음과 폭설로 시작되었던 남편의 폭력은
갈수록 도가 지나쳐 옷을 모두 벗기고,
목에서부터 아랫배까지 날이 선 칼로
지긋이 누르며 그어대거나,
심지어 가스통 밸브를 열며 라이터로 협박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고 싶다고 하였다.
그날도 남편의 폭력을 피해 찾아온 아주머니는
여성의 쉼터로 안내해 달라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애절하게 도움을
간청하던 그 일이 생각났다.

본능적인 부부 꿩의 사랑, 새끼사랑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들의 어려운 이웃을 보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앞장서던 아빠 장끼와 새끼들을 보호하며 뒤 따르던 어미 까투리처럼
알콩달콩 살아갈 수는 없을까.

습한 기운과 뜨거운 열이 못 살게 굴지만...
오늘따라 여름하늘이 더 없이 높고 푸르다.
한 여름 오후에 다시 숲속의 빈 터로 산책을 가고 싶다.
단란했던 꿩들의 가족을 만나고 싶다.

裕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