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걸으며

오솔길...

yousong 2004. 10. 31. 23:14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더라.

금오산으로 가는 길이 뭐 그리도 막히는지.

우리 집의 개 이름...

이름하여 멍개란 놈인데

이 놈과 아내와 모처럼 콧구멍에 바람 좀 쐬겠다고

나선 길이 인산인해는 아니지만

사람들을 비집고 길을 걸어야할 정도로

복잡했다는 말이지.

 

가끔 아내가 산책가자고 요구할 때가 더러 있거든.

그러면 꼭 한 놈이 낑겨야만 하는데

바로 애물단지 놈이 멍개야.

멍개는 차 타기를 워낙 좋아하는 놈인지라

멀미 하나 하지 않고, 꼿꼿이 앉아서

밖을 응시하며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고개를 내밀고 연신 신나하는 놈이야.

 

오늘은 항상 가던 길을 거부하고

금오산 호숫가를 거꾸로 돌기로 했지.

주차장에서 호수 사잇길로 가면...

오솔길이 나오는데 여긴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한가봐.

길목마다 연인들이 물가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사진을 찍거나, 밀담을 나누거나...

여튼 보기 좋은 곳이기도 해.

 

산길을 접어들어 멍개란 놈이 보채길래

목끈을 풀어 주었어.

신나게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자기 영역표시하느라... 한쪽 다리 들고

깨금발로 여기 저기 촐싹거리며 잘 돌아다니더만.

아내는 바로 뒤에서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걷는 데만 열중이지, 나에겐 말 한마디 붙이지도 않더만.

 

단풍이 정말 잘 들었어.

그곳 하늘은 가끔 보이질 않을 때가 있어.

하늘이 나무 숲에 막혀버린 듯 하는 곳이 더러 있지.

멍개는 원 주인인 여동생이 미국에서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연신 까불며 잘도 돌아 다니던데...

나도 저렇게 멍개처럼 신나하며 살아갈 때가 있었던가 싶더라.

 

호숫가는 물이 맑은 편이어서

단풍과 어우러져 마치 외국 어느 한적한 호숫가에 온 듯한

느낌을 강하게 일순 받았다.

풀섶은 말라가는 것 같에.

스스슥 거리는 소리가 기분이 좋고,

낙엽을 밟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시몬이야기를 읊어댈 정도로 감성적이 되더군.

 

가끔씩 눌러대는 디카의 셔터소리를 간간히 들으며

우리 일행은 계속 오솔길을 걸었지.

마주치는 아낙의 일행들이 멍개에 놀라

소스라치게 큰 소리를 지르는 통에

오히려 내가 놀라 멍개 잡느라 바쁘고,

물가에 잠시 쉬고 있으니....

이따만한 잉언지 붕언지 정확하진 않으나

펄떡거리며 뛰어오르는데 그거 보기 좋더라.

멍개는 고기를 보고 환장을 하는 것 같은데

지가 오리잡는 사냥개면 사냥개지...

붕어잡이 개는 아니잖아?

 

오솔길을 걸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더군.

그냥 머리를 텅 비우고,

가슴도 텅 비우고....

평소 모습이 아닌 운동모자 푹 눌러쓰고...

그리고 썬글래스 하나 도둑놈 버젼으로 걸치고...

그렇게 조용한 길을 걸으니 바로 여기가 천국아닌가 싶더라.

 

산책은 영혼을 맑게 해준다는 말...

나 그거 믿는다.

홀로 걸으면 잡념이 많지만,

한편으론 정화되는 듯 해.

아내와 멍개와 함께하는 산책은 모처럼 그래서인지...

그저 편안하기만 하더라.

얼마만에 같이 걸어 보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하질 않아서 그런지

발걸음 템포를 잘 못맞추겠다라고.

이젠 발걸음을 메트로놈 100정도로 함께

보조를 맞출 수 있겠더라.

 

노곤함을 느낄 때...

산에서 내려왔지.

두런거리며 사람구경해가며.. 그렇게 왔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우리 멍개 구경하느라

내가 원숭이꼴이 된 듯 하더라.

아이들은 멍개보고 좋다고 하는 놈...

무섭다고 울며 엄마 품으로 뛰어가는 놈...

강아지 이쁘다고 머리 쓰다듬으려 하다가

으르릉 거리니 도망가던 아가씨들...

뭐 그렇게 주인공인 멍개 놈 뒷바라지 했던 하루였다.

 

자주 산엘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

이렇게 그냥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한번 돌고 오면

마음이 확실히 가벼워짐을 느낀다.

아내도 나와 동감이더군.

어쩌면 콧구멍에 바람쐬러 갔다가

아내에게 코꿰인 것 같어.

 

이제 한 주간이 또 시작이구나.

죽자고 또 일해야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르지만...

이젠 무엇을 위해 일할 지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뚜렷한 목표의식없이 닥치는데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그리할 지도 몰라.

이젠 나이도 나이니만큼...

작은 목표 하나라도 세워서 조금씩 이루어가며 살고 싶다.

 

후기도 아니고..

그냥 산책을 했던 넋두리도 아니고..

이런 글을 잡글이라고 하지.

음악이 좋다.

그냥 이대로만 있었으면 좋을 순간이다.

여기에 와인이나 위스키 한 잔이면 좋겠지?

술 꺼내러 간다.

한 잔 해야지.

 

裕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