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걸으며

나홀로 아리랑

yousong 2005. 7. 14. 15:23

 

 

거무튀튀한 툇마루에 걸터 앉아

찌뿌둥한 하늘을 응시하시는 할머니.

근심어린 표정이 얼굴 가득하시다.

이내 '명태잡이'란 아리랑을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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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서방님은 명태잡이를 갔는 데

바람아 강풍아 석달 열흘만 불어라

                      *

너 죽고 내가 살아 무엇을 할까나

어쨌던지 살아서 돌아만 와라

                      *

너보고 날봐라 너따라 살겠나

정리가 좋아서 내가 너따라 산다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흥흥흥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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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곤 환한 얼굴이 되시며 나를 바라 보신다.

 

- 나요... 우리 서방님에게 이 노래 들려주면 되게 좋아하셨당께라.

- 긍께 논산에서 살다가 목포로 온 지 40년 됐지라.

- 이 아리랑은요... 벌써 간 서방님 생각날 적마다 부르지라.

 

할머니의 우수어린 표정이 젊으셨을 적 아릿다운 모습이 연상됐다.

논산댁이라 불리우며 타향 목포에서 곱게 사셨던 분.

할머니의 표정이 오늘따라 치매끼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서방님이라 부르시며 먼저 간 바깥 어르신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표하신다.

 

대번에 표정이 바뀌며 하시는 말씀...

 

- 그란데 아저씬 누구요?

 

할머니가 치매환자가 된 지 3년 째.

독실한 신앙인으로 권사라는 직분을 가지셨단다.

가끔씩 본 정신 돌아오면 곱고 수더분한 아낙으로 바뀌시고

곧잘 노래로 아리랑과 신식 가요까지 못 부르시는 게 없으시다.

 

- 할머니... 명태잡이 가셨는데 위험하잖아요.. 왜 강풍아 석달 열흘만 불라 하지요?

 

- 아... 그건 강풍이 불어야만 명태잡이가 잘 돼서 안그라요.

- 그래서 이절엔 부디 죽지말고 살아 돌아오라 하잖소.

- 이 노랜 말이오... 나이 들어 정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철학이 있는 거지라.

 

- 네... 할머니 오늘따라 무척 고우세요.

- 비가 내릴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이내 할머니의 눈가엔 이슬이 맺히셨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많으신 듯한 할머니.

 

- 나 들어 갈라요...

 

- 네 할머니...

 

치매환자이신 할머니의 한을 보았다.

그 깊은 내막까지 알 수가 없다.

여든하나가 되신 할머니지만...

언제나 깔끔하고 단아하시다.

 

홀로 외로이 계신 할머니의 나홀로 아리랑...

생각이 깊으신 할머니의 걸어오신 여정을 되짚어 가고 싶다.

갯내음이 느껴지는 끈적한 바람이 분다.

 

 

裕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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