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젠가 한낮의 땡볕은 어린 가슴을 밖으로
끌어내는 약이었던가 보다.
땡볕이 내리쬘 때 쯤...
동네녀석들이 다 모이는 곳은
우리 집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전봇대 바로 앞은...
새까만 얼굴에 스포츠 머리에 이상하게 생긴
파란 눈을 가졌던 아저씨가 강냉이를 튀기던 곳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김씨 아저씨는 비오는 날에는
빨간 천에 흰 글씨로 새겨진 '딱 한 잔 집'에서...
이따만한 노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 몇 대를 시켜선,
김치조각과 오뎅국물로 혼자 왕대포로 속을 푸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의 김씨 아저씨는
닭장처럼 만든 철사망으로 된 뻥튀기 장에서
동네 아낙들을 대상으로 땀 흘리며 일하셨다.
증기기관차 화통처럼 생긴 검은 강냉이 기계 바닥에
시뻘겋게 불을 지폈던 숯불 풍로를 돌렸었다.
"뻥이요~!"란 외침과 함께...
강냉이가 고압에 튕겨져 사방팔방으로 흩어졌었다.
그 아저씨의 생업도구는 기계와 빗자루,
강냉이를 담는 큰 양푼이가 전부였던 기억이 난다.
어스름 밤이 오면,
동네 녀석들은 모두 전봇대 밑으로 모였다.
영동이와 영시, 영식, 영호 형제들과
옆집 일본 적산가옥에 살았던 순희,
건너 집 쌀집 딸래미 춘자,
떡방앗간 쌍동이 경희와 경숙,
그리고 우리 남매들이 밤마다 모여...
다방구, 술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말타기 놀이를 하던 유일한 놀이터였던 전봇대...
놀이를 먼저 하기 앞서 항상 하는 일이 있었다.
강냉이와 튀밥을 동네 녀석들과 함께
청소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엉덩이만 뒤로 내어 놓고,
뻥튀기 아저씨의 철사망에 박혀있던 강냉이를
조막손으로 뽑아 먹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손때 묻은 철사망 앞에 웅크린 채,
강냉이 하나라도 더 빼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을음으로 새까만 얼굴이 된
서로를 마주보며 깔깔대던...
묘한 재미를 느끼던 곳이 나무 전봇대가 우리 놀이터였었던
아련히 추억되어 떠오른다.
뻥튀기 장수 김씨 아저씨는 한쪽 눈이 성치 못했다.
'개눈깔' 아저씨로 통하던 그 분은 생긴 얼굴과는 달리
무척 성실하셨고, 마음씨 좋은 분이었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전투에서 공산군과
전투를 하다가 눈을 다쳐 개눈깔을 박았다던...
꼬마들 모아놓고 입에 침튀겨가며 성토하시듯 했던
김씨 아저씨의 무용담은 가끔 뻥튀기 장수를 만날 때...
그 분이 떠오르곤 하였다.
동네 개구장이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가 있었다.
개망초 피던 철둑길가에서 코흘리개로 소문났던 영동이와 함께
철길놀이와 세발자전거 묘기부리기를 잘 했었다.
3.15 탑 옆을 지나는 철길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뚝방길 비탈을 따라서 신나게 내려오며
스릴을 즐기던 그 추억을 간직하고 산다.
어느 날 철길에서 코흘리게 영동이와 둘이 놀다
전동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끼이익~ 하는
육중한 쇳소리에 뒤돌아 보니 10미터 앞 가까이
돌진해 왔던 전동차를 발견하곤,
빨간 완장에 순경같은 모자를 썼던 차장아저씨가
우리를 잡으러 뛰어 올 때...
기겁을 하며 부리나케 세발 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오다 다친 다리때문에
한달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인공적으로 만든 파란 눈을 했던
뻥튀기 김씨 아저씨는 살아 계실까.
개인택시 기사가 되었다던 영동이는 잘 사는지 궁금해 진다.
이젠 다 추억거리다.
추억속으로 가고 싶은 날이다.
裕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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