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과 소낙비가 뿌렸다.
이런 날엔 소주 한 잔이 간절하다.
김치 한 조각이면 어떠랴.
설컹거리는 김치조각을 오래도록 씹으며
차가운 소주가 식도를 타고
속으로 들어가는 알싸한 느낌이 좋을 날이다.
내 기분에 따라 단비일 수 있고,
때로는 서러움일 수도 있는...
이런 소낙비를 직접 맞으며 걸어본 때가 언제던가.
홀딱 젖은 생쥐머리에...
맨살에 착 달라붙은 런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소년시절.
낯에 흐르는 빗물을 손으로 쓰윽 훔쳐내며
악동들과 생각없이 뛰어 놀던 그 때가 그립다.
자동차가 드물던 그 시절...
철벅거리는 흙탕물에 맨발로, 때로는 고무 장화신고
물탕을 튀기며 걸었던 소낙비 내리던 날.
어여쁜 아가씨만 골라 흙탕물을 튀기고 달아나던
얌통머리 없는 운전수의 심통이 떠오르는 오늘은
통쾌하게 웃으며 달아 빼던 그 총각모습이
오히려 순수함으로 떠오른다.
"우르르꽝쾅쾅~~!!!"
예리하고 서슬이 시퍼런 칼날같은 번개가 치던 날,
슬레이트 집 유리창 안.
마루에 걸터 앉아 바라보던 창밖 세상...
폭우를 그대로 맞으며 저만치서 걸어 오는 소녀...
우산도 없이 담담히 걷어가던 무표정한 계집아이의
젖은 살색 실루엣이 골목 귀퉁이로 사라졌던 그 소녀는
이런 날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다.
소주를 맥주 잔에 딸아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다.
10원짜리 된발음으로 지랄같은 세상을 안주삼아 씹고픈 날이다.
서습지기(暑濕之氣)가 휘감는 오후다.
소낙비 맞으러 동산으로 갈까나...
푸념을 잘 들어주던 '딱 한잔 집' 酒母하고 소주 한 잔 기울일까나.
裕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