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흩뿌리는 희뿌연 안개비...
숲의 잡목들이 을씨년스럽고
비에 젖은 누런 풀섶이 물을 머금은 채
봄맞이 채비를 한다.
앞산 한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하이얀 은사시들의 재잘거림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인기척에
입을 다무는 오후.
풀잎 길과 진흙탕 길을 지나
숨가쁘게 한 고개를 넘고
비바람에 척박한 가슴을 적시며
오랜 인연의 갑옷을 벗어주고
그리도 가벼운 몸짓으로 서 있는
저 달팽이...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 이기 다 내려놓은
소리없는 달팽이의 기다림,
오늘도 여전히 침묵 속에 있다.
裕松